18 - 5, L'homme hors-série
ㅤ살카이안 클라셰트는 상식인이다. 간혹 멋대로 사는 설정이기는 했지만 일탈이나 변덕도 상식선에 사는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인 법이다. 사실을 먼저 나열하고 본다면 그는 첫키스를 아무에게나 줄 마음은 없는 적당한 순정 청년이었다. 입술박치기를 키스로 칠 마음이라고는 없었다는 소리다. 까짓 좀 닿는대서 기억에 남을 거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당장 제 쪽이 그럴진대 상대라고 해서 큰 타격을 입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건 머리가 썩 나쁘지 않다면 알만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대뜸 입술을 가져다 박았던 건 티격댄다고 하기에도 민망한 대화로 화가 났다기보다는 차곡차곡 쌓인 얄미움 때문이었다. "당신도 하고 싶은 건가요?" 그렇겠냐? 말이 통할 수 있는 상대라는 건 몇 마디 나눠 보기만 해도 쉽게 알 수 있는데, 이 녀석은 빤히 제정신일 수 있을 듯한 주제에 왜 자진해서 봐줄 만 한 건 낯짝뿐인 녀석이 되는 걸까? 대체 하고 싶은 게 뭘까? 뭘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한 대 패주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고 마침 동급생은 연애 대상이 아니랬으며 어떤 고집에도 이유가 없을 수는 없으니 일단 동의도 없이 그럴싸한 스킨십을 하면 열은 안 내더라도 짜증은 내지 않을까? '클라셰트 군은 경우라는 걸 함양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하며 어처구니없어해 주지 않을까? 다 틀렸다.
ㅤ그가 갑자기 사탕을 하나 꺼내 물 때까지 살카이안은 저게 기분전환이겠거니 싶었다. 뭐 대단하게 열 받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속 긁어 놓는 데에만 성공해도 이긴 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으므로 모르는 사이에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었는지도 몰랐다. 머리와 허리가 붙잡히고 퇴로가 없어져도 어라 싶었을 뿐, 동작에 자연스러움이 지나쳐서 입술을 앙다물거나 밀쳐낼 생각조차도 순간 하지 못했다. 그 다음은 그냥 당황이 맞았다. 자업자득으로 희롱당하게 된(어폐가 있다) 과정이 필요 이상으로 생생했겠으나 베로샤의 서고가 2222커뮤고 장르는 메타 판타지인데다 차원 밖 존재의 출연이 상식에 맡겨진 것이 그에게 행운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사탕 하나가 녹는 데 십 분 약간 안 걸린다는 사실 쪽은 살카이안에게 확실한 재앙이었고 그는 당분간 그 비슷한 거라도 입에 대지 못하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밀어내는 것도 응하는 것처럼 채여가는 일이 네다섯 번쯤 반복됐고, 그 다음부터 살카이안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열기와 오한이 동시에 치미는 미친 경험을 감내하며 아르키오라가 언제 질리는지 기다렸다. 혀를 깨물거나 발을 밟거나 무릎으로 대를 끊으려 들지 않은 것은 사람됨이라기보다는 패닉 탓이었으므로 그마저도 기다렸다기보다는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고 하는 쪽이 맞았다.
ㅤ도무지 쓸 데라고는 없었던 저항 탓에 한껏 밀착되었던 몸이 떨어졌을 때, 살카이안은 뒤로 주춤거리다가 다리가 풀려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테크닉이 뭐 어쨌든 관계없이 당연히 좋았기 때문은 아니었고 소름이 돋아 머리가 거꾸로 설 것 같았다. 이건 뭐 하는 놈이야?
ㅤ"혹시 키스는 처음이십니까?"
ㅤ살카이안은 망연하게 그를 올려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ㅤ아니, 그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고, 너 같은 자식이 처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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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