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카이안 클라셰트는 입학 첫날 얻은 별칭을 퍽 우습게 생각했다. 몇 살부터 연주했냐는 말에 30년 전을 이야기하던 아드리안, 예언에 앞서 무언가를 본 것은 맞다고 하던 레오노르, 처절히 잃어 보았다던 이난나와 더는 노래하지 않는 루-안느. 매번 슬그머니 발을 뺐지만, 그는 이제 마법사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마음속 한구석에서 슬그머니 추측하고 있기야 했다. 한 명이 있다면 두 명도 스무 명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외면하고 회피하려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래서 물론, 살카이안은 마법사다.
살카이안은 열두 살의 말과 행동을 전혀 신경쓸 마음이 없었다. 그리 보이도록 의식할 생각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로존딘의 어느 지방 유지가 찾아와 하던 말을 듣기로, 입체적 사고가 어느 정도 완성되는 나이라는 건 생각 이상으로 어려서 열 살만 되어도 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에는 차고 넘친다고 했다. 당시 속 편한 아홉 살이던 살카이안을 빼면 그 자리의 누구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저는 아닌데요!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방문객은 조금 곤란한 표정이었다. 그의 열 살 난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몇 년 후였지만 사실 그만한 시간까지는 필요 없었다. 이전 생의 열 살, 혼자서 마을에 나갔다 돌아온 살카이안은 며칠간 방문객의 말을 떠올렸다. 그렇구나, 그건 과장도 포장도 아니었구나…. 지나간 고뇌는 흔하게 미학이 된다. 다만 겪기 전부터 들었던 것은 확실하게 지식이 된다. 몇 배는 되는 시간이 지난 지금 고뇌는 간 데 없었지만 그 사실만큼은 여전히 살카이안의 머릿속에 깊게 새겨져 있었다. 살카이안은 안다. 굳이 한 번의 시간을 되풀이하지 않더라도, 열두 살의 뇌라는 건 생각 이상으로 끝내준다.
그럼 보통의 열두 살을 흉내낼 마음이라고는 좁쌀만큼도 없는 살카이안이 어떤 맥락 아래 열두 살을 들먹이고는 하느냐면, 예외야 종종 있기야 하겠지만 대체로는 다음과 같았다. 안전과 시간. 스스로 사랑하거나 사랑하게 될 것을 위해서 온전히 시간을 쓸 수 있는 나이여야 한다는 게 적당한 요약이 된다. 그리고 살카이안은 그 시간을 무엇을 위해서 사용할지 태어날 때부터, 아니 죽을 때부터 이미 결심을 끝냈다.
전생의 살카이안은 손에 잡아 보지 않은 악기가 없다시피 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꼭 그럴 이유도 없었다. 일곱 살과 아홉 살 터울의 손윗형제들이 뭔가 못 하는 것이 있어야지. 그들은 서로를 보완하며 완벽했고 살카이안은 대공이 되겠다는 생각 같은 건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두 번째 기회가 없었다면 계속 그랬을 테고 실제로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랬다. 그래서 이 연령 불문의 살카이안은 알게 되었다. 가능성이 아예 없으면 손을 뻗고 싶다는 욕구조차 좀처럼 일지 않는다.
이 문장이 어떻게 발목을 잡고 삶을 희망찬 수렁으로 밀어넣을 수 있는지는 넘어가자.
어쨌든 살카이안 클라셰트에게 주어진 가능성이란, 많은 마법사들에게 그렇듯 시간이 되었다. 대공이 되려면 예술 하나쯤에는 능통해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라서, 그래서 그냥 그럴 수밖에 없는 거야. 살카이안은 자신이 바이올린을 생업 삼는 미래라는 것도 때로 그려 보았으므로 상대의 말 자체는 새삼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 하게 된 거고 하다 보니 재미있어진 거지.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야. 더 가고 싶어진 거고."
이제는 눈을 감아도 가슴으로 보이니까…. 하지만 난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지키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이 정말로 그럴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싶은 것뿐이라고. 앗, 잠깐만. 사랑하는 것을 지키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이 지킬 수 있는 사랑으로 눈을 돌리도록 만들어 주고 싶은 것뿐이야.
"하지만 한, 스무 살쯤 되면…."
문득 살카이안은 눈치챘다. 그는 자신이 지금껏 스스로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왜 그토록 마법사가 되고 싶지 않은지 질문받으면 가끔 설명에 끼어들되 대체로 명확하지 않았던 말이 있었다. 가장 명확했던 것은 이렇다. 그러다가 정작 중요할 때에 가족 같은 건 잊어버리고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가 삼켜지든 끝장이 나든 한 줄 글으로나 소식을 듣겠지. 살카이안은 세상의 멸망을 막으려 하지 않는다.
"아……."
그냥 같이 있고 싶은 거지,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대화는 전혀 이상할 게 없었는데 삼키기로 한 대꾸 탓에 뜬금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전조가 없었다. 벅차오르는 감각도 없었고 울분이나 서러움도 없었다. 그게 그렇게 어렵나? 그렇게 살면 안 되나? 사람은 왜 쓸데없이 외로움을 타냐고? 사람은 왜 쓸데없이 외로움을 타느냐고 했냐? 다른 것을 생각한 적은 없어? 예를 들면 왜, 사랑에 빠지느냐거나. 외로움은 아무래도 좋은데 항상 그게 문제였다. 그건 항상 무서울 만큼, 모든 것을 한순간에, 내던지게 만든다. 살카이안의 유일했던 마법은, 아니 어쩌면 두 번이었을지도 모르는 마법은 언제나 그랬다. 어떤 전조도 없었고 그냥 몸과 입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 톡 터지고 나니 눈물은 속절없이 후두둑 떨어졌다. 살카이안은 그냥 멍청하게 서 있었다.
너는 왜 나의 아무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예비되지도 않았으면서, 이름 없이도, 질문과 이야기로 남을 헤집어 놓지? 답은 간단하다. 살카이안 클라셰트는 질문 자체를 무시하는 일이야 잦아도 일단 던져지기만 한다면 곧장 답을 도출해낸다.
그냥 시간이 있어서 그렇다.
줄곧 그럴 테다.
내내 그럴 테다.
유감스럽게도 살카이안은 디아만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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