ㅤ살카이안은 분명 감이 좋고 그럭저럭 섬세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었지만, 가웨인의 눈이 흔들렸을 때에나 아차 하고 말았다. 자신조차 어쩔 수 없었던 질문에 남을 배려할 틈을 마련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답게 세공된 인격은 아니었던 탓에. 그가 알고 싶었던 것은 사실 가웨인에 대한 정보가 아니었다. 어떤 날것의 말을 던졌는지 깨닫고서도 질문을 철회할 마음은 들지 않았던 것이 살카이안 리에종 블랑드렌 클라셰트의 나약한 점이었고 그는 가웨인에게서 누군가를 겹쳐 보고 있었다. 살카이안은 그에게서 푸른 눈의 첫째누이를 봤다. 클라셰트의 사람들은 대부분 햇빛 아래에서 투명해지는 색소 옅은 눈을 가졌으므로, 똑같이 볕 아래더라도 깊은 푸른색으로 물결치는 가웨인의 눈과 객관적으로 썩 닮지는 않았더라지만.
ㅤ입을 다문 채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살카이안은 달려오는 결절을 조금 더 생생히 그려 보았다. 인사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유예, 딱 그만큼이 허락되는 경계선에서 물러나지 못하는 상황이란 무엇을 말할까. 달크루아 출생, 어머니는 좀 바쁘시고 아버지는 이제부터 만날 곳에 계십니다. 누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의 이름은. 살카이안은 그런 말 따위를 상상했다. 인사하지 못해서 다행이구나 싶었다. 인사 같은 건 시간이 아무리 있었더라도 하지 못했을 테다. 얼굴을 더 보거나 끌어안았더라면 좋았겠는데 그러다 나란히 삼켜지지나 않았으면 망정이었겠지. 결국 인사 비슷한 것도 하지 못했으니 이러나 저러나 똑같았던 셈이다. 하기사 스물두 명의 마법사들 중에 관등성명을 한 사람이 그리 많겠는가.
ㅤ살카이안은 생각을 넘어서 마침내 느낄 수 있었다. 너는 나를 절 대로 들어 주지않겠 구나…. 직접 들이고 거두었던 사람들의 목숨값이 몇이어야 다음 생으로까지 이어지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는지, 그런 계산에는 추호도 동의할 마음이라고는 없는 살카이안이라도 가웨인에게 있어서 삶이 무엇일지를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네가 멈출 수 있을까? 너는 내가 아는 최고의 마법사가 될 거야. 그 말은 물론 조금도 칭찬이 아니었다.
ㅤ살카이안은 내내 눈만 깜박이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원을 주고받는 일, 같은 꿈을 꾸는 일, 마음이 옮겨가는 일, 믿는 것을 직시하고 소원이 이어지는 일. 전부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살카이안이 살았던 세계는 아주 아름다웠지만 사람이 별로 없었다. 결국 끝까지 함께한 사람도 함께할 사람도 없었고 잠시 들렀다 간 방문객만 잔뜩이었다.
ㅤ겉으로 드러내도 좋은 것이 없으니 한없이 내면으로만 침잠하기가 마련이지만 따라서 아무것도 내놓을 수 없는 살카이안이 묻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에 의미가 있었을지, 남겨진 자의 인생이 어땠을지, 그런 것을 무심코 상상하다가 멈춰 버리고는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럴 때마다 곁에 아무도 없었고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ㅤ"그럼 만약에 말이야, 그런 너를 대신해 죽은 사람 중 하나가,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전장까지 따라간 나였다면."
ㅤ거기까지 입을 움직이다가 웃음이 나왔다. 그 세계의 내가 설령 너의 무엇이었더라도, 어떤 시간을 간청했었더라도 아마 별로 변하는 건 없었겠지.
ㅤ"그랬어도 너는 다시 검을 찼겠지…."
ㅤ그 눈부신 포부 앞에서 오독될 것도 없이 담백한 표정의 살카이안은 눈만 말갛게 깜박이며 가웨인을 들여다보았다.알 것 같았다. 앞에 선 것이 가웨인 아발론 나이트루스인 한 답은 나와 있었으니 살카이안의 질문도 온전히 던져질 의미가 없었다. 예상할 수 있는 잔인한 질문으로 두 번이나 베어넘기지 말고, 입을 열었으면 알아서 답을 말해야 했다. 또한 그는 가웨인을 아는 것 이상으로 누군가를 알았고 그들을 사랑했다.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럽게도 또 알 것 같았고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알고 있었으니까. 증명 종료.
ㅤ살카이안 리에종 블랑드렌 클라셰트, 28세, 1438년 4월 2일. ㅤ르네앙드 오리종 베르제린 클라셰트를 감싸고 결절에 접촉하여 사망.
-------------- ... ... ...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떡하지?하다가 그만... 출발 전 배경으로 유지/ 왠지 이미 순례에 와 있는 대화다/ 동일 타래 내 마무리 후 배경 전환/ 신규 타래 전부 괜찮습니다.... 선택을 떠맡기는 저를 용서하시고 편하신 쪽으로 반응해주세요... 감사합니다...
ㅤ참 순진한 사람이다. 살카이안은 언제나 가웨인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쭉 생각하다 보면 느끼는 데에도 성공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졸업을 목전에 둔 2월까지도 그럴 수가 없었다. 제 일 하나는 똑바로 다룰 수 있어야 맞을 텐데도, 왜 남에 대한 어떤 인식들은 제 것임에도 마음 따라 바뀌어 주지 않는지 야속하기가 그지없는 일이다. 홍수처럼 밀려오는 슬픔에 어떻게 침묵하나요? 그래, 참 올곧은 사람이다. 살카이안은 안다. 가웨인에게는 제 말이 들어먹히지 않을 것이다. 설득도 갈등도 강요도 다 쓸모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되레 물을 수 있었다. 그냥 멸망을 막지 않고 내버려두면 안 되나? 너는 절대로 그러지 않겠지.
ㅤ"인간이 인간의 재앙을 막을 수 있도록. 인간의 삶을 인간이 결정할 수 있도록. 결절은 정복되어야 하고 세계는 마땅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ㅤ그러나 살카이안이 생각하기에, 인간은 원래 재앙을 막을 수 없다. 그는 가웨인을 막고 설득하며 반목할 논리를 얼마든지 댈 수 있었다. 그래서 너는 성공해서 여기 있느냐고, 그 세계는 멸망을 면할 수 있었느냐고, 당신은 마땅한 결말을 쟁취하고 이제는 또다른 세계를 구하기 위해 납신 구원자님이시냐고 말하면 되었다. 이미 일어난 일은 과정이 지워지고 결과만 남기가 십상이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놈팽이일수록 말만큼은 얼마든지 얹을 수 있었다.
ㅤ살카이안은 가웨인이 어떻게 행동할지 알았다. 그는 분명 저보다는 훨씬 일관된 사람일 테니까. 몸과 마음과 생각이 전부 따로 놀아서 언제나 통제 아래에 놓여 있어야만 하는 저 같은 사람이 그와 함께 있으면 나란히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게 빤했다. 잡지 못한 손과 감겨 주지 못한 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게 뜻하는 바는 이렇다. 가웨인 아발론 나이트루스는 오래도록 살아남은 자다. 남을 구하며 제 몸을 보전하기까지 한 이들이 어떤 눈을 할 수 있는지 살카이안은 가웨인을 보며 처음 알았다. 처음인데도 어쩐지 낯이 익었다.
ㅤ"단지, 그뿐인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희망을 버리지 말아 줘요."
ㅤ너는 분명히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겠구나.
ㅤ혹은 운의 문제였다 해도 살카이안은 자신이 그렇지 못하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그러니 알면서도 물은 것은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미리 가슴에 새겨 두기 위함이었다. 나는 너를 설득할 수 없어. 네게 손이 닿는 거리에 있어서는 안 되겠어. 그러나 잔잔한 미소만 띄운 채 예상했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 친근하게 소름끼치는 푸른 눈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일었다. 살카이안은 제 심장이 가슴 한가운데에서 뛰고 양팔과 머리가 따라 두근거리는 걸 예민하게 느꼈다. 왜일까, 살아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질문이어서일까.
ㅤ"가웨인."
ㅤ결국 갑작스러운 질문이 나직하게 튀어나갔다.
ㅤ"너 대신 죽은 사람은 없었어?"
ㅤ아니, 역시 묻고 싶지 않았는데. 눈은 바로 뜨고 있음에도 눈꺼풀이 무거웠다. 마주하는 그의 눈이 너무 파랗다.
---------------- 대사 띄어쓰기 등을 임의로 조금 만졌는데 저는 부족한 인간인지라 순전히 제게 익숙한 방향으로 만졌습니다(...) 맞게 만진 건지는 모릅니다(저기... 혹시 오류가 있거나 불편하시다면 죄송해요 웃...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