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카이안은 몇 번인가 따귀를 맞았다. 정말로 무뢰배 같고 폭압적이기 짝이 없는 건 역시 그 비유 쪽이겠지만 아무튼 입학 후로 그는 원치 않게 이름을 불리게 되었다. 살카이안, 클라셰트, 살키, 그것과 비슷하지만 심지어 이제는 제대로 불리지도 않는 아명 쪽을 어쩌다 별명으로 만들어 버린 녀석도 있었다. 서로 통성명을 하는 대신 아예 새 이름을 붙여 버린 경우도 있었고 뭐가 됐든 반드시 부르고 말겠다고 실랑이를 하다가 눈물까지 보인 사람도 있었다. 도대체 그깟 이름이 뭐라고…. 물론 정말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부르거나 불리지 않겠다고 버티는 일 따위도 없었을 것이다. 살카이안은 겨우 우기기 나름인 그 이름 하나가 존재를 붙들어 놓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사람은 좋든 싫든 그렇게 구성된다.
'마곳'은 그냥 그런 발음의 이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뜻을 싣고 의미를 붙이지 않는다면 에단이나 루이즈 같은 이름들과 마곳이 다를 것이 뭔가. 평범한 이름을 짓는 데도 나름의 기원은 있는 것이라고 살카이안은 생각했다. 야, 나는 원래 마곳이었어. 내가 붙인 이름은 아니지만 이름을 싫어하는 거랑은 별개로 이게 내 이름이다 정도는 인정한다고. 불리게 될 본인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므로, 마법사가 되고 싶지 않다던 살카이안은 그쯤에서 물러났어야 했다. 정 신경 끄라는 듯한 말이 반복되었다면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 길도 자진해 이름을 밝힌 시점에서 흐릿하게 바래 없어졌다. 죽여버리겠다느니 엄포를 놓던 기세는 간 데 없고 그가 겨우 그 한 줄의 이름 앞에 눈물을 흘려서, 그래서 살카이안은 그에게 새로운 이름이 반드시 필요하겠다고, 자신이 대단할 것이라고는 없는 한낱 인간이라는 것도 잊고, 마치 신이라도 된 기분으로 생각하면서…. 그러는 사이에 눈앞의 그가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이름은 생각해 볼게. 근데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아무런 뜻도 없는 줄 알았던 그건 음식 이름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뜻이 없는 이름들은 사실 어딘가에서는 이미 뜻을 가지고 불리고 있을지도 몰라. 그럼에도 살카이안은 마주선 채로 불쑥 입을 열었다. 가지 마. 사라지지 말고 거기 있어.
"나는 L과 N이 좋더라고. A와 I도 좋고."
행하는 순간에는 후회가 없었다. 머리 한켠은 이상하게 개어 있었지만 이성은 말리지 않았다. 살카이안 클라셰트에게는 그런 순간이 몇 번 있었다. 그게 삶을 송두리째 틀어 놓았는데도 새로운 삶을 사는 법은 사실 잘 몰랐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손과 득을 떠나서, 마치 그렇게 행동하라는 듯 시선을 잡아끌고 귀를 열어 두는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이 있었다. 인간은 개연성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므로 저항할 수 없는 순간, 그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고 후회도 미련도 죄책감도 당장에는 방해하지 못하는 순간, 순수한 자신이 되는 순간이 봄바람이 불고 북풍이 돌아오듯이 찾아옵니다.
"내 이름은 실키가 바뀐 거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마가렛, 이건 꽃 이름이고, 마엘린느Maëlynne."
낯선 소리가 굴러다녔다. 어쨌거나 살카이안은 그를 부르고 싶었다. 멋들어진 의미도 부드러운 배려도 없었다. 그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역시나 따귀를 올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이기는 했지만, 부르고 싶었다. 이름은 허락이다. 살아도 좋고 있어도 좋다는. 갈 곳 잃은 것처럼 헤매다 사라질 것이 걱정되는 한 사람을 붙들어 매는 것이 우선이라, 그러다 제 쪽이 묶이게 될 것은 당장 생각할 바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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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구려도 견딜수밖에 없으실텐데 답멘이나 DM으로 편히 반응 부탁드립니다...
의미있는 이름 피하고 검색으로 겹치는 거 피했더니 결국 4음절이 되더라구요
뭐가됐든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하는 것뿐이라...
롤플상 넘어가시더라도 아웃트로 후 조율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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